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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스미스의 <가을>

by 아보마요 2019. 5. 19.

앨리 스미스 < 가을 >

 

" 아, 안녕. 그가 말한다. 너다 싶었다. 좋다. 만나서 반갑구나. 뭘 읽고 있니?"

 

<가을>은 포스트 브렉시트 소설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변화를 겪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내게 <가을>은 부러운 우정 소설이었다.

 

두 주인공인 대니얼과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가 어린 시절 이웃으로 처음 만났다.  대니얼은 당시 늙은 동성애자라는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없었다. 우연히 이웃을 인터뷰하라는 숙제를 받은 엘리자베스가 대니얼과 소통하게 되면서 둘의 정신적 교감이 이루어지며 평생의 친구로 자리 잡게 된다. 대니얼은 문학과 예술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미술과 언어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엘리자베스에게 물었다. "오늘은 뭘 읽고 있니?"

 

만날 때마다 이렇게 질문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이 들어 내 곁에서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슬플지.

 

"평생의 친구. 그가 말했다. 우리는 때로 평생을 기다려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된단다."

 

"아무도 대니얼처럼 말할 줄 몰랐다.

 아무도 대니얼처럼 침묵할 줄 몰랐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이야,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조금 아는 이들이 우리를 제대로 보았기를 바라야 해. 다른 건 결국 별로 중요치 않아."

 

특히 엘리자베스에게 대니얼은 더욱 소중했다. 소설 속 첫 부분에서 우체국 직원과 엘리자베스, 엄마와 엘리자베스, 타인과 엘리자베스의 대화를 통해 엘리자베스가 대니얼과의 대화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볼 수 있다.

 

"언어는 양귀비 같은 거야. 무언가로 땅을 좀 휘저어 주기만하면 잠자던 말들이 선홍색으로 심심하게 피어나 퍼지거든"

 

"나무 옷을 입은 사람만 아직 살아남았다. 그런데 총을 든 남자가 마침내 총을 쏘려는 찰나 나무 옷을 입은 사람은 총을 든 남자의 눈앞에서 진짜 나무로, 거대한 나무로, 매혹적인 잎들을 흔들며 우뚝 치솟은 황금빛 물푸레나무로 변신한다."

 

그리고 <가을>의 특징은 표현이 정말 풍부하다는 것이다. 예쁜 표현이 너무 많고, 재치있는 말장난도 많아서 밑줄 칠 문장이 가득했다. (대니얼의 상상 속 장면으로 시작하는 첫 부분에서 이게 뭐지 싶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그 상상력이 너무 좋았다.)

 

어떤 사건이 있는 것도, 자극적인 결말도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고 어딘가 슬프면서도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감성이 또 말랑말랑해졌다.

 

사계절 4부작의 첫권, 가을

나머지 3권도 기대되는 작품이다.